생명력이란 살아남는 능력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새로 시작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 스코트 피츠제럴드 -
▣ 삶이 엇갈리는 이유
코끼리는 초식동물임에도 몸무게가 1톤을 훌쩍 넘는다. 호랑이나 사자도 어쩌지 못하는 코끼리를 꼼짝 못 하게 하는 존재가 있다. 바로 코끼리 조련사다. 그 비결은 코끼리가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한 가지를 가르친다. 어린 코끼리를 말뚝에 묶어놓고 마음대로 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리저리 몸부림치다가 이내 포기한다. 이렇게 자란 코끼리는 몸집이 거대해져도 말뚝을 빼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의 '해봤자 안 되더라'는 정신이 몸에 뿌리 깊게 박혀 있어 아예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이다. 이것이 '학습된 무력감'이라고 한다.
코끼리만의 이야기일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우리들에게는 모두 작든 크든 자기만의 꿈이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걸 이루는 반면 이루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왜 그럴까?
▣ '나'를 좋아하는 게 먼저다
우리는 어느 시기마다 한 번씩 삶의 차원을 업그레이드해야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여덟 살이 되면 초등학교에 가야 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가야 하고 대학을 졸업하면 회사에 취직을 해야 한다. 나이가 차면 결혼하고, 연차가 되면 승진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 환경이 바뀔 때마다 '적응'이라는 홍역을 치른다. 업그레이드 과정은 우리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익숙할 만하면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해서 끊임없이 우리의 생존력을 테스트한다. 이 테스트를 치르느라 온 사회가 바람 잘 날이 없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축배를 들고, 누구는 고배를 마신다. 축배는 자신감을 만들어주고 더 힘 있게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만, 엎어지고 깨져 무릎이 아니라 가슴에까지 든 멍은 살아갈 힘을 소진시켜 버린다. 당연히 한숨이 깊어진다. 그럴 때마다 자심감의 실종, 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된다.
가끔 사람들을 만나 물어본다.
'열심히 살고 계시죠?' 대부분이 '예'라고 한다.
그러면 다시 물어본다 '지금의 나, 마음에 들어요?' 지금의 자신이 좋습니까?'
그러면 선뜻 대답하는 이들이 없다.
다시 또 물어본다 '나를 믿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누구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그런데 복잡한 세상을 살다 보니 가끔 이상한 쪽으로 좋은 사람이 되곤 한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기에 앞서 나 스스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아닌 상황이 되는 것이다.
나 스스로에게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나를 믿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다(이기주의가 아니다). 뭘 하든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나 자신을 믿어주고, 그런 일을 하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이다. 설사 하는 일이 잘 안 되더라도 무조건 나를 탓하고 세상을 원망하기보다는 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무엇이 잘못됐는지 받아들여서 다음에 잘할 수 있는 나를 만드는 것이다.
아침에 눈 뜨면 한숨이 나오고, 출근길이 지옥 같고, 열심히 살았다고 살았는데 되돌아보면 지금까지 뭘 했나 생각이 들고, 당장 먹고살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나의 모습에 화가 나 신경질적으로 변하고 있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거대한 코끼리처럼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건 아닐까? 천하의 호랑이와 사자가 무서워하는 1톤이 넘는 코끼리인처럼 그걸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먹고사는 게 중요한 문제지만 진짜 문제는 경제적인 게 아니라 정신적인 게 아닐까? 내가 지금 하는 것이 가족의 행복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순서가 바뀐 건 아닐까? 혹시 조직이 우리를 묶고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묶여 있는 건 아닐까? 정말 그런가?
그렇다면 다시 한번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지금의 '나' 마음에 드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도대체 내가 가야 할 길은 어디에 있을까?
▣ 마지막에 웃는 사람의 특징
'1년 전 오늘 정말 고민하고 있던 게 무엇이었는지 생각나는 분 있으세요?' 끙끙거리면서 고민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생각이 안 난다면 그리 고민할게 아니었을 수도 있고 어려움을 극복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렇게 죽을 듯 고민했던 것을 지금 고민하지 않는데도 여전히 잘 살고 있다는 건 뭘 의미하는 걸까?
이런 삶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건 하나다.
아니다 싶은 건 빨리 잊는 게 좋다는 것이다.
배워야 할 교훈만 추리고 나서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자신에게 솔직하느냐, 아니냐가 삶을 엇갈리게 하는 또 한 번의 갈림길이 된다. 있는 힘껏 노력했는데 일이 안 될 수 있다. 이럴 때 '아쉽지만 할 수 없지 어쨌든 정말 고생했어' 이렇게 자신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을 탓하며 불평불만을 키워가는 사람이 있다. 두 유형의 사람이 이후에 어떤 길을 갈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리고 이런 시간을 통해 자신감이 자랄지 그렇지 않을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나의 힘이 어느 만큼인지,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되면서 다음에 성공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하는 일마다 잘되는 것도 자신감을 만들지만 나 자신을 위로하고 이끌어 가는 것도 자신감을 키운다. 마치 언 땅을 뚫고 솟아나는 새싹이 그런 것처럼 비바람이나 추위에 굴하지 않고 조금씩 자신을 성장시킨다.
'결국 마지막에 웃는 사람은 나일 거야' 그렇다 마지막에 웃는 사람들은 한두 번 실수한 것을 실패라고 하지 않는다. 보는 사람이 있건 없건, 많건 적건 몇 번이고 도전해서 성공할 때까지 한다. 될 때까지 계속하는 게 성공이라면 실패는 하다가 중간에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계속 도전하는 힘은 내 안에 있다. 내 안에 있는 힘이 모이고 그것이 자라나 길을 만든다. 길은 언제나 내 안에서 시작해 밖으로, 그리고 앞으로 나아간다.
<봄 길>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 시인 정호승 -
내 마음속 길을 찾아야 한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스스로 길이 되어 걸어가야 한다. 언제까지 한숨 쉬며 지나온 길만 더듬거리고 있을 것인가? 언제까지 항상 저만치 앞서가는 세상을 헐레벌떡 뒤따라가기만 할 거신가? 이제는 나의 길을 가야 한다.
<시작하라 그들처럼(서광원 지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