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모험이다.
- 제임스 골드스미스(영국의 전설적인 투자자) -
▣ 발등에 떨어"진" 일을 하는 사람 vs 발등에 떨어"질" 일을 하는 사람
건설 분야에서 CEO를 지낸 분이 한 말이다. '저는 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얘기해요. 사는 게 팍팍하고 재미가 없어졌다고 생각되면 자신을 되돌아보라고요. 내가 어디에 서 있나 돌아보고, 자기 꿈을 찾아보라고요. 대개는 없는 경우가 태반이에요. 억대 연봉, 승진? 이런 건 꿈이 아닙니다. 겪어보니 꿈이 아니었어요.
정말 우리가 절박하고 초초하게 매달려야 할 게 뭘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발등에 떨어 '질' 만한 일을 주로 했어요. (그는 발등에 떨어'질'과 떨어'진'을 구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발등에 떨어'진' 일을 하는 사람은 항상 발등의 불을 끄느라 남보다 '확실하게' 뒤처지지만, 발등에 떨어'질' 일을 하는 사람은 미리미리 생각하고 계획하기 때문에 앞서 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해야 할 일'을 생각해보지 않았던 거죠.
진짜 해야 할 일이란 지금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죠. 나이가 들어서도, 현장을 떠나서도 그 연장선상에서 할 수 있는 일. 그런 일을 하나라도 찾았어야 했는데, 지금은 아침에 일어나면 '할 일'이 없어요. 하루하루 정말 바쁘게 살았는데 이제는 아침에 눈뜨면 '오늘 하루는 또 뭘 하면서 보내야 하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질 때가 많아요. 친구 만나는 것도 하루 이틀이거든요.
그는 살아온 인생을 후회하지 않는데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일이 있어야 해요. 보람 있는 일. 하면 가치가 느껴지는 일, 그래서 그 일을 하다 보면 나도 즐거워지는 일, 그러면서도 먹고살 수 있는 일, 그런 일이 필요해요. 사실 현직에서 물러난 후 몇 년을 그냥 보냈는데 이제는 뭘 좀 하려고 합니다. 근데 막상 찾으려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 지금 내 가슴의 온도는 몇 도인가
세상은 앞으로 더 흔들릴 것이다.
흔들리는 세상에서는 생과 사가 극명하게 갈릴 것이다.
누군가는 살아남고 누군가는 사라질 것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별 탈 없겠지' '좋은 게 좋은 거지'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는 이들의 삶을 가만히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시작'이 없다. 가만히 있는 것을 좋아하고, 평온하고 조용한 것을 좋아한다. 일이 생기면 골치 아프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세를 따른다. 절대 먼저 시작해서 사서 고생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물론 다른 삶을 사는 이들도 있다. '새로운 시작'이 많다. 시행착오도 많고 실패도 있다. 상처도 많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남다른 생명력을 얻고 생존력으로 이어진다.
애벌레가 아름다운 나비가 되려면 자신을 보호해 주던 갑옷 같은 껍데기를 벗어야 한다. 갑옷을 벗는 순간 완전 무방비 상태가 되어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 과정을 견뎌내면 훨씬 탁월한 경쟁력을 가진 날개가 돋아나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릴 수 있게 된다. 더 이상 기어 다닐 필요 없이 화려하고 향기로운 꽃들 사이로 자유자재로 날아다닐 수 있다.
소라게 역시 태어나자마자 갑옷 같은 소라껍데기 속에 들어간다. 여기에만 들어가면 누가 뭐래도 안전하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몸이 커지면 '집'이 작아져 새로운 '큰 집'으로 이사를 해야 한다. 그런데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순간처럼 큰집을 찾아가는 시간이 가장 위험하다. 소라게는 과감하게 작은 집을 버리고 큰 집을 찾아 떠난다. 그 많은 생명체들이 사라져 갔음에도 지금까지 작은 소라게가 살아남은 이유다.
경기변동이 짧아지고 변화가 급류처럼 흐르는 세상 속에서 이력서에 넣을 만큼 새롭게 시작한 일이 없다면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나도 모르게 성장이 아니라 현상유지를 위해 살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말 너울너울 날아가는 나비가 되고 싶은데 용기가 없어 아직도 껍질 속에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자. 굴뚝같은 열정이 없어 작은 집을 떠나지 못하는 소라게가 되어 있을지 모른다. 희망이 없고 꿈이 없으니 시작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지금 나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자.
지금 내 가슴의 온도는 몇 도일까?
[어느 95세 할아버지의 회고]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덕에 65세에 당당하게 은퇴할 수 있었죠.
그런 내가 30년 후인 95세 생일 때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내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퇴직 후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덤'이라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 없이 죽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
그런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습니다.
30년의 시간은
지금 내 나이 95세로 보면....
3분의 1에 해당하는 기나긴 시간입니다.
만일 내가 퇴직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때 나 스스로가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95세이지만 정신이 또렷합니다.
앞으로 10년, 30년을 더 살지 모릅니다.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째 생일날
95세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