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정말 트렌드에 민감한가
모 드라마가 시청률 38%를 찍으며 세상이 떠들썩했을 때, 내가 주목했던 다른 데이터가 있다. "스마트기기를 조작하며 TV를 보는 비율 86%" 열 명중 8명 이상이 TV를 보면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 다른 디바이스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 보자. 전체 TV 광고 콘텐츠 중 누수되는 콘텐츠 비율은 얼마나 될까. 실제 측정 데이터에 따르면 TV 광고 콘텐츠 누수율은 무려 63%에 달한다. 이미 시청자 대다수는 TV와 함께 다른 디바이스를 쓰는 게 생활 습관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드라마 시청률 38%는 중요한 데이터임에 분명하지만, 더 깊게 들어가면 해당 드라마 시청자 중 63%는 드라마 방영 전후 혹은 중간에 붙는 tv 광고가 나오는 순간, 광고 시청 이외에 다른 행동을 한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더라도 그 데이터의 의미를 깊이 있게 다각도로 분석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트렌드 새비하다' 말하기 어렵다.
트렌드 새비하다는 건 단순히 트렌드를 많이 알고 수집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트렌드를 자기 업무에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다. 영어 Savvy의 이미는 '능통하다', '요령이 있다'다. 아무리 많은 트렌드를 파악했다 한들 그것을 '어떠한 관점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과 창의력이 없으면 가치 있는 산출물을 기대할 수 없다.
영국의 물리학자 뉴턴은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깨쳤고,
고대 그리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는 욕조의 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황금의 밀도'를 측정하는 법을 발견했으며,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시계탑 옆을 지나는 열차를 보면서 '상대성 이론'을 구상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작은 정보로부터 전혀 다른 결과물을 도출해 내는 혜안이 있었다. 즉, 자칫 간과할 수 있는 데이터를 발견하고 이를 자신의 과제와 연결시키는 독창적인 관점과 창의력이 있었던 것이다.
▣ 판을 바꾸는 결정적 기술
우리나라 대표적인 글로벌 소셜플랫폼 기업 하이퍼커넥트가 개발한 화상채팅 앱 아자르는 '배경 없는 화면'을 설정할 수 있는 기능을 장착시켰다. 사생활 노출 부담 없이 편하게 화상채팅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021년 2월 기준, 아자르는 230개국에서 5억 이상의 누적 다운로드를 기록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아자르가 선보인 '배경을 지우는 기술'은 하이퍼커넥트가 개발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기술이라는 점이다. 인공지능 기술 중에 이미지 콘텐츠의 해상도를 높여주는 '업스케일링' 기술이 있는데, 이 기술 덕분에 인공지능 시스템은 인물이나 사물의 테두리를 정교하게 인식해 깔끔하게 오려낼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현재의 업(業)과 크게 관련 없어 보이는 기술을 적용해 볼 생각을 했다는 점이다. 앞서 프랑스 방송사가 루이 14세의 목소리를 재현하는 기술을 활용했듯이 말이다.
두 사례 모두 아이디어에 기술이 창의적으로 결합됐을 때, 어떤 가치가 창출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영국의 항공사 브리티시 에어웨이는 옥외전광판이 항공기 운항 정보를 트래킹 하는 시스템과 연동되어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형식의 광고도 있다. 영국의 피카딜리 서커스에 설치된 디지털 전광판에 어린아이가 않아 있다가 일어나면서 뭔가 발견한 듯 손가락으로 공중을 가리키며 즐거워한다. 그 순간 실제로 비행기가 상공을 날고 있다. 비행기가 나타나는 시점이 되면 영상이 자동재생되도록 아이디어와 기술을 접목한 것이다.
디지털 옥외광고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아이디어지만 어떤 기술을 결합하느냐에 따라, 또 어떤 도구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양지차로 달라진다.
관점을 혁신해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것만큼이나 '기술'이라는 도구를 잘 선택하고 다루는 것 역시 중요한 것이다.
▣ 방탄소년단이 유튜브를 활용하는 법
'공개된 지 13분 만에 조회수 1,000만 뷰 달성, 20시간 55분 만에 1억 뷰 달성.' 최근 발매된 방탄소년단(BTS)의 신곡 <버터> 뮤직비디오의 유튜브 조회 기록이다. 라이브 동시 접속자 수는 390만 명으로 집계됐다. 미국, 영국 등 101개국의 애플 아이튠즈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전 세계 각종 음원 플랫폼을 휩쓸며 연일 기록을 경신했다.
'흙수저 아이돌'이라 불릴 만큼 척박한 현실에서 한국 가수 최초 빌보드 싱글 1위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방탄소년단의 성공 신화는 과연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당연히 노래의 힘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트렌드, 기술, 데이터를 자신이 하는 일에 창의적으로 연결시킨 그들의 혜안을 빼놓을 수 없다.
방탄소년단은 유튜브에서 영상의 품질보다 소통의 방식이 중요하다는 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의 방식은 세련된 콘텐츠는 아니지만 자신들의 소박한 일상을 가감 없이 공개했고,
10대와 20대에게 쏟아지는 사회적 편견을 음악을 통해 깨고 싶다는 소망을 또래와 함께 나눴다.
스타가 아닌, 동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일곱 청년의 모습은 팬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방탄복과 군대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듯, 이 일곱 청년과 항상 함께하겠다는 의미의 팬클럽 '아미'는 그렇게 탄생했다.
하이브의 방시혁 대표는 최근 개최된 한 포험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방탄소년단의 성공은 유튜 기술의 존재 가치와 파급력을 증명한 것입니다. 전 세계인들이 방탄소년단의 노래와 대화를, 그리고 메시지를 자발적으로 해석하고 공유하며 방탄소년단을 유튜브 시대의 주변부의 영웅으로 만들어냈습니다."
유튜브를 단순히 영상 콘텐츠를 모아놓은 창고로 사용했다면 지금의 아미도, 지금의 방탄소년단도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정보와 기술을 보다 깊게 들여다보고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 것보다 어떻게 기술을 창의적으로 활용해 최고의 성과물을 도출해 낼 것인지가 더 중요하니 말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