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용자 관점에서 출발하기
데이터를 포함해 트렌드를 문제해결로 연결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은 '사용자 과점'이다. 사용자 관점에서 트렌드를 바라봐야 하고, 사용자 관점에서 문제해결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고민의 초점을 사용자에 맞춰져 있지 않으면 어떤 데이터와 기술이 필요한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
구글에서 강조하는 가장 중요한 철학 중 하나도 '풋 유저 퍼스트' 즉, 모든 의사결정에서 사용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심지어 매출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사용자 경험'과 '사용자 가치'를 최우선으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원칙이 흔들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오늘날의 고객들은 제품 서비스의 품질만으로는 감동하지 못한다. 품질은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고 한 번 클릭으로 구매까지 할 수 있는 서비스가 제공되기를 바란다. 직접 부품을 추가하고 조립해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구를 소유하고 싶어 하고, 아이들이 먹을 친환경 채소가 플라스틱이 아닌 종이 상자에 담겨 배달되기를 바란다.
고객들의 요구 수준이 높아지고 다양해진 만큼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는 것 역시 수월해졌다. 그래서 가능한 것이 일대일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는 퍼스널라이즈드 마케팅이다. 이러한 맞춤형 마케팅을 위해서는 다양한 지식과 기술, 새로운 트렌드를 도구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트렌드 새비' 역량이다.
▣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기
사용자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본다는 것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기'다. 사용자의 불만을 세밀히 들여다볼 때,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로 탈바꿈된다.
대구광명학교에서는 특별한 졸업앨범을 제작했다. '손으로 보는 따뜻한 세상'이라는 이 앨범은 시각장애 학생들이 직접 만질 수 있도록 졸업생들의 얼굴을 제작해 넣었다. 뿐만 아니라 목소리를 담은 음성파일도 함께 제작해 탑재했다. 친구의 얼굴과 목소리를 손과 귀로 직접 접하며 학상시절의 추억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여기에는 3D 프린트와 스캐너라는 신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지만, 학생의 입장에서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다면 이 졸업앨범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의 10대들은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불리기도 한다. 스마트폰을 비롯해 노트북 태블릿 PC까지 평균 5개의 다양한 디지털기기를 능숙하게 사용한다. 아이들에게 디지털기기는 오락 수단이면서 학습 도구이기도 하고 친구들과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 채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디지털 환경에 노출되어 자라온 아이들에게 정서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이유로 디지털기기를 못 만지게 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판단일까? 정서 발달을 이유로 사용을 허락할지 혹은 금지할지의 관점이 아닌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의 관점에서 고민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접근법이다. 즉, 사용자인 아이들의 관점에서 진정성 있게 문제를 고민하는 부모가 취해야 할 방법일 것이다.
▣ 인지적 접근, 인체공학적 접근
사용자 관점에서 한 발 더 들어가면 인지적, 인체공학적이라는 과점이 중요해진다. 다양한 욕구와 취향을 지닌 사용자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자동차 회사들이 시도하고 있는 차량구독 서비스를 주목해 볼 만하다. 일정 구독료를 제불하고 여러 차종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로, '소유' 보다는 '체험'을 중시하는 사용자들의 변화 추세를 잘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매월 구독료를 내고 체험하는 방식은 사용자 입장에서 접근이 용이하다. '자동차를 구독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아이디어는 인지적 혹은 인체공학적 접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트렌드 새비하다'라는 개념에는 '사용자 관점에서 인지적, 인체공학적 접근을 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접근법이 얼마나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방역 지침이 공식화되기 전의 일이다. A식당은 테이블 예약을 받아 한 테이블 건너 한 테이블만 예약을 받아 고객이 안심하고 식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여기에 '3부 예약제'까지 실시해 테이블 수가 줄었는데도 매출이 오히려 늘어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B식당은 손님이 줄면서 직원을 줄이고 서빙 효율을 위해 손님들을 한 공간으로 몰아서 식당을 찾은 손님들은 감염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식사를 하다 보니 불편하지 않을 리 없다. 결국 그 식당은 다시 찾지 않게 되었다.
인지적 접근에서 강조하고 싶은 다른 한 가지는 '기억'이다. 기억에 남는다는 건 사용자 입장에서 그만큼 인상적이고 긍정적인 경험을 했다는 의미다. 그런 측면에서 도쿄에서 가장 좋은 호텔로 '아만호텔'을 꼽는다. 시설이나 교통이 좋아서가 아닌 고객들에게 '인상에 남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호텔 정문에 도착하니 종업원이 내려와 문을 열어주었는데 이렇게 인사를 하는 것이다. '조용민 님. 아만호텔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예약자 명단에 이름이 있긴 하지만 어떻게 얼굴까지 매칭해 이름을 불러주는지 궁금해 물어보니 미소와 함께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다. 갑작스런 복통에 약을 사기 위해 프런트에 문의하자 직원 한 분이 약국까지 동행해 필요한 약을 구입할 수 있도록 통역을 해주었다. 화려하고 값비싼 서비스는 아니지만 그들의 진심은 내 뇌리에 깊이 박혔다.
경험에 비추어 보면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말실수를 하더라도,
핵심을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편이 훨씬 기억에 남아야 '아 이걸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고,
그런 기대감이 실질적인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 인간은 애초에 인지편향의 동물이다.
인지적 접근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는 어떤 현상을 판단하는 인간의 인지 방식이 생각보다 매우 협소하고 허술하다는 사실이다. 가령 육아용품을 검색하는 사람은 모두 아이를 둔 기혼자일 것이라는 판단이 그렇다. 실제 조사에 따르면 육아용품을 검색하는 사람들의 40% 이상이 미혼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데이터를 근거로 한 분석이라도 인간의 불안전한 인지가 개입되어 오류를 일으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음 그림에서 가운데 막대를 보면 아마 오른쪽이 더 진하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막대의 색은 그러데이션 없이 일정하다. 막대 바깥 공간의 그러데이션 때문에 착시 현상을 일으킨 것이다.
이 같은 한계로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보다 월등히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예로, 구글의 인공지능 기술은 일반 안과의사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당뇨별성 망막증을 진단할 수 있다. 안과의사 8명의 평균 진단 정확도가 91%인 반면, 머신러닝 인공지능으로 망막의 이미지를 분류해 진단했을 때는 정확도가 95%에 달했다.
이처럼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정교한 일을 할 수 있게 된 기술의 핵심은 '딥러닝'에 있다. 머신러닝의 하위 개념인 딥러닝은 간단히 말해 수많은 데이터를 통해 반복학습을 하는 것이다. 가령 이세돌 9단과 대국을 벌인 알파고는 기보(機譜)를 공부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형태의 대국을 수만 번 반복하는 방식으로 공부했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수많은 대국을 해보고 그 데이터에서 이기는 패턴을 분석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기상예측 인공지능 시스템도 딥러닝 기반으로 한다. 비가 오기 전날 일정한 시각의 하늘 사진을 데이터로 축적한 뒤 이 데이터의 패턴을 분류해서 '내일 비가 올지 안 올지'를 예측하는 것이다.
'트렌드 새비'할수록, 즉, 사용자에 대한 데이터를 광범위하게 확보할수록 좀 더 정확한 인지적, 인체공학적 접근을 꾀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확보한 데이터를 분류해 패턴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가진 데이터가 어떻게 분류되며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어야만 문제해결에 연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공지능이 더 자할 수 있는 것은 인공지능에 맡기고, 우리는 정확하고 올바른 '관점'으로 데이터를 읽어내고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